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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에 영광 얻은 대표적 인물
작성자 관리자 날짜 2022-01-27 17:11:05 조회수 828
평론가 윤범모

예술가에 있어서 '사후의 영광'처럼 값진 것은 없다. 한국 미술사에 있어서 박수근은 살아서의 가혹한 고생과 시련을 사후의 영광으로 보상받고 있는 드문 작가 중의 한 명이다. 그의 사후 명성은 이중섭의 명성과 같은 위치에 서 있다.

박수근은 생존시에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했던 불행한 화가의 표본이었다. 그러나 그가 작고 하자마자 세상은 공모라도 한 것처럼 '박수근 신화'를 재창조해냈다. 그는 작품에다가 단정하게 한글로 이 두 자만 쓰는 낙관방식을 택했다. '수근'이라는 서명은 마치 불행했던 천재화가의 표본처럼 미술적 명성에 센세이셔널한 명성까지 겹치게 되었으나, 그의 명성이 화단을 뒤흔들 때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살아 생전에 미술계의 핵심 부위에서 이름 한번 크게 불러본 일조차 없었던 그는 작고 후 미술로써 한국적인 화폭의 전형을 이룬 화가로서 대중들의 심금 깊이까지 새겨지게 되었다. 고통과 역경이 환희와 영광으로 바뀐 것이다.

미술 수업은 물론 정규 학교교육마저 받지 못한 박수근은 독학으로 이룩한 불굴의 작가상을 펼친 거목이 되었다. 그는 생존이라는 멍에와 전신으로 싸우면서 자신의 조형세계를 창출해냈다. 그것도 가장 한국적인 인간상을 나름대로의 독특한 기법으로 이룩해 내는 특출함을 보일 수 있었다.

때문에 그를 두고 서양미술이 도입된 이래 새로운 표현미재인 유화로써 가장 한국적이면서 현대적인 회화세계를 이룩한 작가로 꼽는 평자들도 있다. 그는 낯선 유화기법을 충분히 육화시켜 자신의 어법으로 승화시킨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였다.

박수근은 25세 때 이웃집 처녀에게 구혼의 편지를 썼다. "가난한 화가인 나로서는 여유있는 생활은 못할지라도 정신적인 사랑과 이해로써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 자신이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 같은 전형적인 한국의 여인상과 소박함은 나의 절대적인 반려자로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좋은 걸작이 나올 수도 있겠지요.

어린 시절 그림책에서 밀레의 <만종>을 보고 훌륭한 화가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했던 박수근. 하지만 집안의 몰락으로 인하여 동경유학은 커녕 생활고 속으로 독학으로 화가에의 꿈을 이루어야 했다. 다행히 18세 때 <봄이 오다>라는 수채화가 [선전]에 입선되어 뜻을 더욱 굳힐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몇 년간의 공백기간을 거쳐 제15회 [선전]에서부터 여덟 번을 연속 입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선전]에서의 성과는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다. 첫 입선작 <봄이 오다>는 습작기의 작품답게 건실한 구도의 화면을 보이고 있다. 눈이 쌓인 듯 넓은 앞마당을 전경으로 크게 설정하고 중심부에 기와집 등을 배치한 작품이었다. 이같은 화풍은 뒤에 18회전에서 <여일(麗日)>이란 작품으로 변형되어 갔다.

이렇듯 동일 주제의 반복은 초기의 <일하는 여인>이나 <농가의 여인>등이 모두 같은 구도로, 절구질하는 여인상을 그린 것과 같다. 주제에 가깝게 접근하여 직설적인 화면 효과를 노린 것은 후기의 작품경향과 맥락을 같이 하며 전체적인 톤은 아직 탄탄하게 짜임새를 이루지 못한 면을 보이고 있다.

어떻든 프랑스의 농민화가 밀레를 흠모했던 박수근 역시 시골사람들의 정경을 그대로 화폭에 담고자 힘을 기울였다. 특히 '좋은 걸작'을 위해 이웃 처녀에게 청혼도 했듯이 실제로 평생의 반려자로서 좋은 모델이 되는 인연을 낳기에 이르렀다. 그의 결혼은 자상한 성격에 가정적인 생활상을 펼쳐 인간애를 실현하는 보금자리가 되었다.

부인을 전속 모델로 삼아 전신마비에 빈혈까지 일으키게 하며 제작을 열중했다. 외롭고 어려운 나날이 한없이 계속되었다.

전쟁으로 가족들과 흩어진 그는 미군들의 초상화를 그려 주며 겨우 연명했다. 그 후 국전이 새로 창설되는 등 미술계에도 새로운 질서가 수립되는 듯했지만 과묵하고 소극적인 그의 셩격으로 인해 항상 외곽의 음지에서만 맴돌고 있었다. 경제적인 고통은 제작생활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진실하게 열심히 사는 사람들'인 가난한 이웃들에게 애정을 쌓기에 소홀하지 않았다. 어쩌면 구도자격인 그의 행각이 그대로 화면에 나타나 진실된 조형공간으로 승화되는 자양분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눈밝은 외국인의 관심을 얻으며 주옥같은 명작을 탄생시킬 때 그는 그만 한 쪽 눈이 실명되는 불운에 부딪쳤다.

그는 가난과 역경 속에서 52세로 생애를 끝내는 마지막 순간에 "천당이 가까운 줄 알았는데 멀어 멀어..."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내가 그리는 인간상은 단순하다. 나는 그들의 가정에 있는 평범한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물론 어린아이들의 이미지를 가장 즐겨 그린다."

박수근의 이와 같은 육성은 그의 조형세계를 구체화시켜 주는 길잡이가 된다. 그가 추구했던 세계에는 무엇보다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이 앞서고 있으며 그것도 평범한 인간성이었다. 그것이 단색조의 질감 속에 선묘(線描)로 매우 간결하게 표현되어 있다.

때문인지 그의 그림 속에서는 식물성적인 체취가 묻어 있다. 나뭇잎 하나 남아 있지 않은 고목을 즐겨 그리기도 했다. 밟으면 밟을수록 더욱 무성해지는 잡초의 인상이 박수근의 그림 속 깊이에 스며 있는 것이다.

따라서 박수근이 가장 한국적인 조형세계를 펼친 작가로 이중섭과 더불어 꼽혀지고 있는 까닭도 결코 우연은 아니다. 그는 예술적 조형능력이 최절정기에 달했을 때 생애를 끝냈다.

그러나 그의 미술세계는 보다 확대된 시각으로 새로운 사회의 미의식을 구축하기에는 아무래도 미진한 점을 남기고 있었다.

박수근의 신화의 비밀을 이룬 작품세계는 어떤 것일까. 무엇보다 그의 작품은 양식상 특이하면서도 독창성으로 가득 차 있다.

화면에 등장되는 소재는 대부분이 생활에 전념하는 시골사람들의 꾸밈없는 모습이다. 농악놀이로부터 빨래나 절구질하는 아낙네 등 일하는 사람들이 즐겨 그려지고 있다.

또한 담소를 즐기는 노인들이나 열중하고 있는 어린아이들, 모두가 가장 진한 삶의 현장에서 있는 그대로를 조형화시킨 건강한 시각현실을 느끼게 하고 있다. 이는 인물의 경우만도 아니다. 그가 즐겨 선택한 자연 역시 한국의 전형적인 인상을 가슴 속에 문신하듯 깊이 새겨 놓았다. 그 가운데 앙상한 나무들의 표현 또한 인물화와 같은 맥락에서 파악된다. 모든 것이 지극히 상식적이고 평범한 소재들이다.

문제는 소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선택된 소재가 어떠한 방식으로 조형성을 부여받아 형상화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막연히 전형적인 한국인의 생활을 그렸다 하여 그것이 모두 가장 '한국적'이 되면서 게다가 훌륭한 명작으로 간주되는 것은 아니다. 흔히 소재주의라고 비판하는 경우가 이를 말한다. 단순히 소재의 선택으로는 조형의식을 논의하기에는 설득력이 매우 희박하다.

오히려 소대에의 지나친 맹종이나 예찬은 건강한 조형 언어의 개진에 해악이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소재에의 경도는 자칫 본질을 호도시키는 위험을 늘 내포하게 마련이다.

박수근의 예술이 지니고 있는 우수성은 소재의 선택과 아울러 그것의 해석방법과 조형화에 있다. 내용과 형식이 조화를 이루어 낸 것이다. 그는 구태의연한 사실주의적 묘사방법에 의한 형상화를 거부했다. 그는 자신의 발성법을 개발해내어 독창성을 부여했다.

그는 화면에 공간감을 무시하고 대상을 평면화시켜 극도로 단순명료한 형태를 추구했다. 이렇듯 절제된 묘법은 배경의 생략과 더불어 주제의식을 극명하게 하는 데 효과를 주고 있다. 그는 최소한의 필선으로 대상을 거의 선으로 조형화하고 있다.

고도의 정신성이 함축되었음인지 필요한 세부묘사는 보이지 않는다. 뿐만 아니다. 박수근 회화 세계에서만 볼 수 있는 화면 바탕의 처리방식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는 일반적인 회화 기법과는 판이하게 다른 택스추어 문제이다. 즉 캔버스에 물감을 두텁게 바르면서 우둘두둘한 질감을 얻는 특이한 효과이다. 마치 한국의 산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석재인 화강암의 표면을 대하는 듯하다. 그것도 오랜 세월동안 풍화에 시달리며 상처를 받은 마애조각과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독특한 질감을 대개 회색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이렇듯 무채색 계열의 기본 채도는 둔중하면서도 강인한 생명력을 감지케 한다. 따라서 박수근의 작품에서는 화려하고 다채로운 요소를 찾을 수가 없다. 이는 소재 자체에서 뿐만 아니라 이의 형상화에서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러면서도 별다른 저항감 없이 한국인의 가슴에 파고드는 호소력을 그의 화폭은 지니고 있다.

이렇듯 원초적인 입장으로서의 화면 구성은 단순한 형식으로 압축된 내용을 표현하기에 용이했던 것이다.

[한국 현대미술 100년] (1984, 현암사) pp. 259-266, 전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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